청지기로서의 그리스도인
10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_벧전 4:10
구원을 받은 사람이 주님 안에서 발견하는 것은 자기의 몸이나 영혼(靈魂), 생명(生命), 자기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소유(所有)라는 것이다. 구원받기 전에는 자기 몸을 부모님께로부터 받았다고 생각하지만 구원받고 나면 모태에서 자신을 조직(組織)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된다(시 139:13). 이 몸부터가 하나님의 작품(作品)인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구원받기 전에는 자기 몸이나 시간, 젊음, 재능, 물질 등 전부가 자기 것이었다.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쓰고 살았다. 그러나 구원받은 사람들은 이제 더이상 그럴 수가 없다. 시간이나 생명, 남은 생애 등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이 맡기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하나님의 것을 맡은 청지기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청지기는 지배인이라는 말과 같이 주인의 것을 맡아서 관리(管理)하는 사람일 뿐이다.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_벧전 4:11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선(善)한 청지기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입 역시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또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이란 말씀대로 봉사할 수 있는 마음이나 힘, 기회도 다 하나님이 주신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 올바른 신앙생활(信仰生活)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_롬 11:35-36
이 말씀은 주님께 먼저 드릴 사람이 없다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만물은 주님이 창조하신 주님의 것이고 지금도 주님으로 말미암아 존재(存在)하고 그 모든 것이 주님께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_마 7:12
하나님이 먼저 사람을 대접하셨고 먼저 주셨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만물이 다 주님의 것인 줄 알고 주님의 것 답게 주님의 뜻대로 돌리며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항상 자기 마음대로 살고 행동하면서 주일에만 성경과 찬송가를 들고 교회당에 가서 찬송하고 기도하고 연보(捐補)를 하는 것은 신앙생활이라 할 수 없다. 주님은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인들의 죄(罪)를 영원히 사(赦)하시고 부활(復活)하심으로 구원받은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子女)로 삼으시고 영원한 천국을 기업(企業)으로 주셨다. 그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_고후 5:15
주님은 구원받은 사람에게 “나는 너를 위해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대속(代贖)했건만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하느냐?”라고 물으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독자(獨子)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독자 이삭은 자기의 전 재산 더 나아가 육신의 생명보다도 더욱 귀한 존재였다. 자기 생애에서 백세에 낳은 이삭보다 더 귀한 존재는 없었을 것이다. 가장 귀한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였을 때 아브라함은 주저하지 않고 모리아 산에 가서 한 마리 양처럼 독자 이삭을 주님께 바쳤다. 그때 하나님은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獨生子)를 우리를 위해 죽는데까지 내어 주셨으므로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위해 살아 달라고 요구(要求)하시는 것이다.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은, 말로만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행동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행동으로 확실히 증명해 주셨기 때문이다(롬 5:8).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에게도 말이나 마음만이 아니라, 실제 행동(行動)으로 사랑을 나타내 보여 달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구원받은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낼 것인가?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장사를 예비한 마리아에게 주님은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막 14:6)라고 하셨다. 마리아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한 사람일 것이다. 우리 각자도 자신에게 있는 옥합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마리아처럼 그것을 깨뜨려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하나님이 구원받은 사람에게 무엇인가 달라고 하실 때는 그것이 하나님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은 자신의 것을 달라고 요구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合當)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 10:37,38)라고 말씀하셨다. “합당치 아니하고 … 합당치 아니하니라”는 말씀은 “주님이 우리 각자에게 준 것에 비해 합당치 않다”는 뜻이다. 아침에 어떤 사람에게 천만 원을 맡겨 놓았다가 저녁에 가서 “아침에 맡겨 놓았던 것을 주시오”하니 오백만 원만 돌려 주었다고 하자. “왜 오백만 원만 줍니까? 천만 원을 맡겼는데요.” “네, 오백만 원은 보관료입니다.” 이러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천부당 만부당한 일일 것이다. 주님은 자신의 모든 것, 즉 목숨을 다해 우리 각 사람을 사랑하여 주셨다. 그 주님의 사랑에 화답(和答)하는 것은 부모나 아들이나 딸이나 형제나 자매나 자기의 모든 것보다 더 주님을 사랑해야만 합당한 것이다. 그렇지 못한 것은 주님이 주신 사랑에 비할 때 합당치 못한 것이다.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_롬 14:7-8
이 말씀은 바울 사도와 같은 특별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이면 누구나 당연히 해당하는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자기만을 위해서 살고 고생(苦生)하고 수고(受苦)한다면 그것은 저주(詛呪)일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도 세상 사는 동안에는 육신에는 고난과 고통이 있다. 그 모든 수고와 고생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주(主)를 위하여 살다가 당하는 고난과 어려움은 오히려 영광(榮光)이며, 주를 위해서 살다가 죽으면 그것은 최고(最高)의 영광(榮光)이다. 자기의 것인지 남의 것인지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도둑이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자기의 것인지 하나님의 것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十一條)와 헌물(獻物)이라”(말 3:8)라고 말씀하셨다.
오래 전 목포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에서 있었던 이야기이다. 그 배에 경찰서장이 탔는데 소매치기가 하필이면 경찰서장의 지갑을 훔치는 일이 발생했다. 경찰서장은 화가 나서 그 배를 항구에 대기(待期)시켜 놓고 한 사람도 내리지 못하게 하면서 자신의 지갑을 훔친 사람에게 자수하라고 말하고 자수하면 용서해 주겠다고 하였다. 그 소매치기가 자수했을 때 경찰서장은 약속대로 그 사람을 용서해 주었을 뿐 아니라 직장도 알선해 주었다 한다. 그 직장은 배 안에서 어떻게 하면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는지를 이야기해 주는 것이었다. 경찰서장의 주머니를 터는 소매치기도 용감하지만 그보다 더 용감한 사람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사람이다. 구원받은 사람 각자가 그렇지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경은 주님이 구원받은 사람에게 맡기신 것을 다음과 같이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또 어떤 사람이 타국(他國)에 갈 제 그 종(從)들을 불러 자기 소유(所有)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그 재능(才能)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마 25:14,15).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눅 19:13). 조금 차이가 있지만 같은 점은 주인이 자기의 소유를 종(從)에게 맡기며 잘 관리(管理)하라고 한 것이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主人)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會計)할 새”(마 25:19). “귀인(貴人)이 왕위(王位)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은(銀) 준 종들의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 저희를 부르니”(눅 19:15). 이 말씀대로 하나님은 구원받은 사람에게 맡긴 것을 각자가 어떻게 장사했으며 잘 관리했는 지에 대하여 회계할 것이고 그에 대하여 보상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6장에서 주인의 소유를 허비(虛費)하던 청지기가 청지기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자기의 장래(將來)를 준비하는 지혜로움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영원(永遠)을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 구원받은 사람 각자가 하나님 앞에 칭찬 받는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하는 것은 주님이 오시는 날 그 행한 대로 계산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네가 나를 위해서 어떻게 살았느냐?”를 물으시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을 어떻게 했느냐?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살았느냐 아니면 내 것을 가지고 네 마음대로 살았느냐?”를 물으실 것이다. 우선 주님이 구원받은 사람에게 맡기신 재산은 무엇인지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