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란 무엇인가?
① 사람의 영혼(靈魂)을 사탄의 권세(權勢)에서 건져내는 것이다
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_히 2:14-15
예수님이 사람과 같은 혈육(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혈육에 속한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다. 곧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은 죽기를 무서워하여 일생 동안 사탄과 죽음의 권세에 사로잡혀 죄에 종노릇하는 사람, 혈육에 속한 자, 사망에 사로잡힌 자를 놓아주려 함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한 사람의 영혼을 사탄의 권세에서 건져내는 것이다.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映畵)를 보면 주인공인 쉰들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찌 독일이 유대인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하던 그때, 온갖 어려움과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의 재산과 모든 사업을 유대인들을 살리는데 투자하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전쟁이 끝났을 때, 자기가 타고 다니던 차나 금배지까지 팔았더라면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었을 텐데 라며 아쉬워하는 그 사람의 모습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오로지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그 사람은 유대인이 아니라 독일 사람이었다. 한 인간으로서 생명을 귀중히 여겨 많은 유대인의 육신의 생명을 구했던 그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아니었고 오로지 한 인간으로서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멸망 받을 영혼들을 구원해야 될 책임을 하나님께 받은 사람으로서, 잠깐의 육체의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전해 주어야 할 사람으로서 어떠한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 우리는 쉰들러 라는 사람이 유대인의 생명을 구하려 했던 마음보다 더욱 희생적인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
② 전도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영혼을 살리는 것이다.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_요 5:25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아담 안에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영혼들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 그 영혼이 살아난다. 예수님이 “나사로야, 나오라”(요 11:43)라고 부르시자 죽어 무덤에 있은 지 나흘 된 나사로가 살아났다. 인간의 육체 속에 있는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죽은 영혼(靈魂)들을 향해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네 죄를 담당했으니 일어나라.” 예수님이 말씀으로 죽은 자를 살리신 것처럼 복음의 말씀을 들으면 아담 안에서 죽었던 영혼이 살아난다. 먼저 구원받은 사람이 그 말씀을 전함으로 죽은 영혼이 살아난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_엡 2:1
우리의 영혼도 복음의 말씀을 듣고 구원받았을 때 살아난 것이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_요 5:24
복음의 말씀을 듣고 깨달음으로 믿을 때 영생을 얻고 영원한 멸망에서 영생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영원히 죽어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영혼을 살리는 일이다. 길을 지나가다가 물에 빠져 죽게 된 사람을 보면 뛰어들어가 건져 주려는 마음이 든다. 만일 ‘에이, 귀찮으니까 모르는 체 하자. 물에 뛰어들어가면 옷을 다 버릴 테고 혹시 나도 죽을지 모르니까’하고 지나갔는데 그 사람이 죽었다면 다음에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그 사람의 핏소리가 들리지 않겠는가? 조금만 수고하고 노력하면 살릴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귀찮아서 모르는 체 함으로 그 사람이 죽었다면 양심의 고통이 없을 수 없다. ‘이 비겁쟁이야! 너는 나를 살릴 수 있었는데…. 외면해서 내가 죽었다. 그러고도 네 마음이 편하냐? 이 비겁쟁이야! 나쁜 놈아!’ 가인이 아벨을 돌로 쳐죽였을 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창 4:9)라는 하나님의 물음에 아벨은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 4:9)라고 대답했다. 하나님께서는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창 4:10)라고 하셨다.
구원받은 사람은 실제로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복음을 전함으로 그 영혼을 살릴 수 있는데도 살리지 않고 버려 두는 것은 그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다. 수술만 하면 살릴 수 있는 사람을 귀찮아서 돌봐 주지 않아 그 사람이 죽었다면 의사는 그 죽음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이다. 법적인 책임을 면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양심은 그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을 것이다. 영혼이 죽어 지옥으로 가고 있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그 영혼을 살리는 일을 게을리 한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책망(責望)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③ 전도는 지옥에 가는 영혼을 건지는 것이다.
11 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 살육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라12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_잠 24:11-12
그리스도인이 지옥에 가는 사람을 보면서도 ‘나는 모른다. 지옥 가든지 말든지…’라고 생각한다면, 사람은 비록 그 사실을 모를지라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신다. 만약 구원받은 사람이 지옥으로 가고 있는 사람을 보고도 권고(勸告)하지 않는다면 중대한 문제가 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한 영혼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여 그 사람을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다. 거듭나지 못한 모든 사람들이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 사로잡혀 멸망하고 있는데 복음을 전함으로 한 영혼이 구원받으면 그는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된다. 이 세상에서 이것보다 더 큰 일은 없으며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오직 그리스도인만이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