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15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_딤후 3:13-17
① 신앙적으로 속이는 자들이 있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구원받지 못한 이 세상 사람들의 삶은 속이고 속는 생활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이 세상에서 한번도 속아 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평생 동안 속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남과 같이 나도 남을 속여야 하는 일들이 생기지만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남을 속이는 것이 큰 죄(罪)가 되므로 속일 수는 없다. 속고 속이는 세상에서 자신은 속일 수는 없고 속기만 해야 하니 아주 큰 손해를 볼 때도 있다. 내가 속으면 나도 다른 사람들을 속여서 본전(本錢)을 찾아야 하는데, 속기만 하고 속이지는 못하니까 문제가 되는 것이다. 결국 남을 속이지는 못할 입장이고 보니 애초에 속지를 말아야 한다. 그리고 속지 않으려면 무엇이든 올바로 알아야 한다. 물건을 하나 사는데도 가짜를 진짜라고 하는 일이 많으므로 속는 일이 생긴다. 속지 않으려면 상품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속는다. 이 세상의 육신적인 것이나 물질적인 것에서 속으면 손해를 보면 그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신앙적인 문제는 속으면 안 된다.
우리 조상 아담은 마귀의 거짓말에 속아 자기뿐 아니라 온 인류를 죄와 저주, 죽음 가운데로 이끌어 들였던 것이다. 마귀는 속이는 자이다. 마귀는 구원받지 않은 자들을 온갖 거짓으로 속여 그 영혼이 멸망하게 하고 구원받은 사람도 속여 신앙생활에 실패하도록 쉬지 않고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올바로 믿는다고 하지만 스스로 속고 있는지 모른다. 천국에 가는 줄 알고 있지만 사실은 지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 14:12). 천국에 가는 길이라고 가르치지만 사실은 천국이 아니라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적인 문제에 속아서 자기 영혼이 멸망(滅亡)의 길로 가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영적으로 속아서 지옥에 떨어진 자들이 누구를 원망할 수 있겠는가? 자기를 잘못 가르치고 함께 지옥으로 떨어진 목사를 원망하겠는가? 그것은 전적으로 속은 자의 책임이다. 구원받은 우리도 과거 그 가운데서 속이는 자요 속은 자로 있었다(딛3:3). 다른 사람을 속일 수 있는 속성(屬性)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고 속은 자였다. 하지만 구원받은 이후 신앙생활에서는 다시는 속지 말아야 하겠다. 말씀 안에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뿐 아니라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도록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② 속지 않기 위해서는 성경이 진리이므로 말씀을 배우고 확신(確信)한 일에 거(居)해야 한다.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는 가운데서 속지 않으려면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한다. 이것은 특별히 신앙적인 문제를 가리키는 것이다. 속지 않으려면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하는데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성경이다. 확신한 일이라는 것은 확실히 믿는 것을 말한다. 믿을 신(信)자는 사람 인(人)자 옆에 말씀 언(言)자를 써 놓은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것, 그것이 믿음이다. 믿음은 말씀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배우고 확실히 알고 믿는 것을 믿음이라 할 수 있다. “예수 믿습니까?”라고 물으면 “예”라고 하다가도 “천국에 갈 자신이 있습니까?”라고 하면 “글쎄요. 죽어 봐야 알지요”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다. 믿는다는 것은 확실한 것이지 애매한 것이 아니다. 비행기를 타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 “어디 가십니까?”라고 물으면 “미국 L.A.에 가려고 합니다”, “L.A.에 갈 줄로 확실히 믿습니까?” “글쎄요. 가 봐야 알지요”라고 한다면 너무나 이상하지 않는가?
필자가 오래 전 호남선 열차를 타고 목포에 가는데 옆에 앉은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디 가십니까?” “대구 갑니다.” “그래요?” 옆에 있던 사람이 깜짝 놀라 “아니, 뭐 어디 가신다구요?” “대구 간다고 그랬습니다.” “아니, 이 열차는 목포 가는 열차인데요.” “아니, 그럴 리가 없습니다.” “지금 영산포에 다 왔어요. 영산포를 지나 조금 더 가면 목포인데….” 목포에 가는 열차를 타고 대구에 가려고 하는 것이었다. 한 사람은 목포 가는 열차라고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럴 리가 없다고, 대구 간다고 하고 앉아 있으니 조금 있으면 열차는 목포에 도착할 텐데 얼마나 황당한 노릇인가! 목포 역에 도착하면 ‘사공의 뱃노래…’로 시작되는 ‘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대구에 가려는 사람은 목포에 내려서 눈물을 한번 흘리고 다시 열차를 바꿔 탈 수 밖에 없다. 대전에서 잘못 탄 것 같았다. 대전에서 경부선 열차를 타야 되는데 호남선 열차를 탔으니 문제가 생긴 것이다. 열차야 잘못 탔으면 바꿔 타고 올라가면 되지만, 신앙의 열차를 잘못 타면 천국에 가는 줄 알지만 지옥에 가게 된다. 그것을 미리 알게 되면 도착하기 전에 빨리 바꿔타야 한다.
구원받는 것이 중요할 뿐 아니라 구원받은 이후의 신앙생활도 참으로 중요하다. 우리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여야 한다. 이 말씀의 “확신”은 다른 번역에는 “깊이 믿는 일에 있으라”로 되어 있다. 말씀을 잘 모르고 믿는 것은 깊이 믿는 믿음이 아닌 것이다. 마치 뿌리가 없는 나무처럼 조금 자랐다가는 바람이 불면 금방 넘어져 버리고 뿌리까지 뽑혀 버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뿌리를 깊이 박은 나무는 태풍이 불어와 잠시 넘어지는 것 같아도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제자리에 선다. 이처럼 신앙이 말씀에 깊이 뿌리 박은 사람은 환난(患難)과 시험(試驗)이 있어도 잠깐 동안은 시험을 받는 것 같지만 잠시 후에 말씀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라고 하신 것이다.
③ 어릴 때부터 성경을 가르치라
디모데는 어머니로부터 성경을 배웠다.
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_딤후 1:5
바울 사도는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있는 거짓이 없는 믿음을 칭찬하면서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던 그 믿음이 네 속에도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외할머니의 믿음이 그대로 유전되어 왔다는 말이 아니라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성경을 가르쳐 주고 그 어머니는 아들 디모데에게 말씀을 가르쳐 준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말씀을 통해서 믿음이 전해졌던 것이다. 그래서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헤어졌으나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이 책 중에 있으니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라는 찬송가도 있는 것이다. 어릴 때 조용히 들었던 말씀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잊어지지 않는다.
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_잠 22:6
다윗도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았으며 그 때문에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승리할 수 있었다.
5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나의 어릴 때부터 의지시라_시 71:5
17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사를 전하였나이다18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_시 71:17-18
아버지는 자식을 낳아 주지만 기르는 것은 어머니이다. 어머니의 믿음이 자녀들에게 전해지기 때문에 가정에서 어머니들의 책임이 더 크다. 디모데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서 성경을 배웠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려서부터 알았던 성경이 능히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말하는 성경은 구약을 가리킨다. 신약 성경은 사도 시대에 기록되었다. 구약 성경은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겠다는 약속을 기록한 것이고 신약 성경은 약속대로 그리스도가 오셔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셨다는 말씀이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다. 성경을 믿는다는 말은 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 것을 가리킨다.
④ 성경은 하나님의 책이다.
16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_사 34:16
이 말씀의 “여호와의 책”은 성경을 가리킨다. 성경이 하나님의 책인 것을 한번 생각해 보라.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인간에게 알리시기 위해서 사람에게 주신 책이니 얼마나 중요한가! 어떤 사람에게 약혼자가 있는데 그 사람이 문학(文學)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쓴 책을 읽고 싶을 것이다. 그 책에는 약혼자의 마음과 생각이 담겨 있을 테니까 ‘그 내용이 뭘까?’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길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책이 성경이다. 물론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긴 편지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필자는 아직 만난 적이 없는 사람에게서 편지를 받는 일이 종종 있는데 물론 필자도 답장을 한다.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에 상대편의 마음을 알 수 있다. 편지 속에는 그 사람의 마음과 생각, 인격(人格)이 담겨 있으므로 그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지 알게 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긴 편지요 책이다.
1 여호와께로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니라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네게 이른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_렘 30:1-2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 ○ 에게 임하니라”라는 말씀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기록한 것이 성경이다. 기록하는 사람은 자신이 기록을 하면서도 그것이 무슨 말씀인지 모르는 것이 많다. 대통령이 비서에게 말한 것을 받아쓰라고 하면 비서는 그대로 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비서지만 내용은 대통령의 마음과 생각이다. “대통령 각하, 이것이 무슨 내용입니까?” “자네는 몰라도 돼. 기록만 해 두라구.” 기록한 사람들이 “하나님,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라고 하면 “너는 몰라도 된다. 이것은 오랜 후에 될 일이다”라고 말씀하셨다(단 12:8,9). “경(經)의 모든 예언(豫言)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感動)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0,21). 성경의 말씀은 사사로이 풀지 못한다. 왜냐 하면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올바로 깨달을 수 없다. 사사로이, 즉 자기 생각으로 성경을 해석(解釋)한다든지 풀어서는 안 된다. 성경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다. 성경을 배워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곧 알 수 있다. 사람의 지능(知能)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성경 비슷한 것조차 지어낼 수는 없는 것이다. 성경은 사람의 머리나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啓示)로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