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사랑은 생명(生命)의 증거(證據)이다
14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17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_요일 3:14-19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믿음을 통해서이다. 복음을 믿음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 예수님께서 친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요 6:47)라고 하셨고 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라고 말씀하셨다. 듣고 믿을 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믿음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먼저는 간증(干證)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러나 간증만으로는 완전치 못한 것이다. 주님께서는 구원받은 사람을 확실히 아시지만, 사람은 그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알 수 있다. 구원받았다는 간증도 하고 침례도 받은 사람 중에도 나중에는 거짓 형제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머리로만 알아서 간증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간증뿐 아니라 생활도 지켜보아야 하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실이 마음에 이루어지면 시간이 경과하면 그것이 밖으로 드러난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마 7:16)라는 말씀처럼 사람들은 그 열매를 보고 즉 드러나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의 구원 여부를 알게 된다.
야고보서 2장에 보면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약 2:14,18)라는 말씀이 있다. 이것은 행함을 강조하는 말씀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믿음을 진단(診斷)하는 말씀이다. 믿음이 있다고 하는데 행하는 것을 보니 그 믿음이 의심스럽다는 말이다. 영광의 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받았다고 하면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괄시하고, 형제가 헐벗고 굶주리는데 도와줄 마음도 없는 것을 보니 믿음 자체가 수상하다는 것이다. 믿음을 실체(實體)라 하고 행함을 그림자라고 비유할 때, 야고보서 2장 말씀은 마치 사람이 서 있으면 사람 그림자가 나타나야 하는데 어째서 개나 돼지의 그림자가 나타나느냐 하는 것이다. 즉, 믿음이 이루어진 결과는 행함으로 드러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것임을 증거하는 말씀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구원받았는지를 알아보는 방법은 첫째 구원받은 간증을 통해서, 둘째 그 간증과 더불어 시간이 경과하면서 나타나는 행함을 통해서, 세째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통해서이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요한일서 3장에서는 구원받았음을 “형제를 사랑함으로” 안다고 하였다. 동일한 주님의 피로 구원받아 성령으로 하나 된 형제 자매이기 때문에 서로 사랑한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주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이 주님이 사랑하신 것 같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 새 계명이다. 육신의 형제끼리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고 협력하고 어떤 문제가 생기면 같이 걱정하고 마음을 같이 한다. 그 이유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처럼 피 때문이며, 그것은 생명(生命)의 법칙(法則)이다. 성령(聖靈)은 피보다 더 귀하므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할 수 있다.
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_요일 5:1
사도 바울이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빌 4:3)라고 말씀한 것도 그들이 참으로 복음을 위해 수고하며 서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실로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생명(生命)으로 들어간 줄을 안다. 사랑은 곧 생명이며 생명의 활동이다. 사랑이 있는 곳에 생명이 있고 생명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다. 사랑이 없는 곳에는 생명이 없으며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서로 아무런 교제(交際)도 없고 사랑하는 마음도 없다면 그것은 거짓이다. 주님의 피로 구원을 받았으면 피차 사랑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은 혈족(血族)끼리 사랑하는 것이나 동일(同一)한 부류(部類)의 사람들끼리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는 사랑이다. 남녀노소 빈부귀천(貧富貴賤)에 관계없이 주님 앞에서 하나가 되어 서로 사랑하는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