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안에서 새 계명이 이루어진다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_요 13:34-35

새 계명은 옛 계명 즉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구약 율법에 대조적인 것이다. 십계명의 주 내용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눅 10:27)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며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 인간은 나면서부터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다. 마음과 목숨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새 계명”은 무엇인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라는 말씀처럼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려 즉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사랑해주셨으므로 주님으로부터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은 목숨을 다해 주님을 사랑할 수 있으며 주님께로부터 받은 그 사랑으로 형제 자매를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주님의 명령이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주님의 계명을 범하는 것이다. 서로 사랑함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끼리 피차 사랑하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사랑, 불쌍히 여기는 사랑이다. 그러나 주님께 받은 사랑을 다른 형제 자매에게 베풀고 그 형제 자매는 그 사랑을 또 다른 형제 자매에게 베푸는 것은 서로 주고받는 피차 사랑이다.


물론 그 사랑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주는 것이다.

9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_롬 12:9
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_벧전 1:22

구원받은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이 그 속에 있다. “예수 날 사랑하셨으니 나도 예수를 사랑하네”(찬송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사랑을 받은 형제 자매를 사랑하게 된다. 지식이나 인격, 빈부 등에 상관없이 단지 구원을 받았다는 이유 하나로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것이다. 장차 천국에서 같이 살 사람들이고 소망이 같으며 한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형제 자매이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구원받은 형제 자매들이 서로 시기하고 미워하고 다투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구원받은 사람 안에 아직 남아 있는 육신의 옛 성품 때문이다. 상대방을 탓할 것 없이 문제는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랑은 남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서 나와야 하는 것이고 사랑의 근원은 주님이시다. “예수님은 사랑의 샘과 같도다 흘러남을 땅에서 맛을 보았네 바닷물이 흐르듯 넘쳐나리니 천국에서 더 깊이 영영히 마시리”(찬송가). 강물처럼 흐르는 주님의 사랑이 자기 안에 있다면 그 사랑이 흘러 넘치도록 해야 한다. 사랑이 없다는 것은 자기 마음에 사랑이 없는 것이므로 다른 형제 자매에게서 찾아야 할 것이 아니다. 주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을 형제 자매에게 나누어주도록 해야 한다. 형제 자매를 사랑한 그 사랑이 자기에게 되돌아오면 좋지만 돌아오지 않더라도 사랑한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주님의 첫째 계명이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구원받은 사실과 서로 형제 자매라는 것을 말로만 하고 행동으로는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겠는가? 말로만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볼 때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게 된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서로 마음이 하나가 되어 온유와 겸손과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 서로 용납하면서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서로 사랑할 수 있다면 전도는 저절로 될 것이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하여 사랑하고 살면 자녀는 자연스럽게 태어나듯이,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주님 안에서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구원의 역사는 저절로 일어나는 결과적인 것이다.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라는 말씀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으로부터 주님의 제자라는 말을 듣게 된다는 말이라기보다는 그들도 주님을 믿게 된다는 것이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도 그 사랑 안에 참여하길 바라고 그리워한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13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_골 3:12-13

하나님이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들이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은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생활 가운데 나타내는 것이다. 이것은 구원받은 사람의 인격이다. 구원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소유해야 한다. 구원받은 사람끼리 서로 문제나 오해가 있을 경우 서로 용서하거나 받아주어야 한다. 물론 그것이 신앙적인 문제여서 교회를 해치게 된다면 정확하게 진단을 내리고 말씀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간의 사사로운 문제는 서로 용서해야 한다. ‘때린 사람은 다리를 오그리고 자지만 맞은 사람은 다리를 펴고 잔다’는 세상 속담처럼 용서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평안이 있다. 그러나 남을 비난하고 공격하고 해치고 미워하고 마음에 문제를 가진 사람은 평강이 없다. 문제는 바로 자기에게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자신의 허물을 용서하신 것 같이 서로 용서해야 한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께 날마다 용서를 받아야 될 사람이 아닌가? 다른 형제 자매의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자기 잘못을 용서해 달라는 것은 잘못이다. 형제 자매가 서로 용서하지 못하고 서로 반목하고 질시한다면 그것은 또한 성령이 하나 되게 하는 것을 방해하는 큰 죄를 범하는 것이 된다.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_골 3:14
14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_요일 3:14-16

세상은 구원받은 사람을 미워하고 대적하지만 구원받은 사람끼리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 구원받은 사람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다. 구원받은 형제 자매를 미워하고 불평하다가 교회를 떠나는 사람을 보면 그가 과연 구원받았는지 의심스럽게 느껴진다. 참으로 구원을 받았고 그 속에 생명이 있다면 어떻게 형제 자매를 비난하고 불평할 수 있겠는가? 그 사람 속에 어떻게 생명이 있다고 할 것인가? 사랑은 생명이다. 그러므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아직 사망에 거하는 것이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목숨을 버릴 수 있다면 무엇을 버리지 못하겠는가? 자신이 주님의 은혜를 받음으로 백 번 죽어도 주님의 사랑을 갚지 못하는데 하물며 죽는 것도 아니고 형제를 사랑하라는 명령을 지키지 못한다는 말인가?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것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주님의 사랑을 갚는 길이다. 주님께 받은 은혜를 형제 자매에게 갚는 것이다. 과거 그리스도인들은 형제 자매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기까지 하였다. 그러한 사랑이 우리에게도 있다.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 도와줄 마음을 막는 것은 육신 즉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이다.

17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_요일 3:17-18

사랑에는 책임이 있다. 사랑은 연약함을 서로 담당하고 용서하고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또한 사랑은 행동으로 나타난다. 하나님도 죄인된 우리를 말씀으로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시고 죽음에 넘기우면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주시지 않았는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시지 않았다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행함과 진실함으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 행함으로 하는 사랑이 진실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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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요릴 3:19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께 속했으며 영생을 얻었다는 증거이다. 뿐만 아니라 주님 앞에 살고 있는 증거이기도 하다. 주님 앞에서 마음이 굳세어지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행했기 때문이다. 구원받은 사람은 어려울 때 참으로 사랑을 나타내야 한다. 어려울 때 서로 도와주고 붙들어주는 것이 사랑이 아니겠는가? 다른 영혼이 구원받도록 하는 것도 주님의 사랑이고 구원받은 사람이 서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도 사랑이다. 자신을 희생해서 주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주님이 기뻐하시겠는가? 주님이 그 사랑을 나타내라고 하셨기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은 그 사랑을 보여주어야 한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_엡 4:32

“서로 인자하게“라는 말씀은 서로 너그럽고 은혜를 베풀며 도와주고 친절하게 대해 준다는 뜻이다. 구원받은 사람이 서로 인자(仁慈)를 베풀어야 하는 이유는 이 세상에서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 너무나 피곤하고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영혼이 구원받아 천국에 갈 소망이 있지만 심적으로나 육신적, 환경적, 신앙적인 것 등으로 인하여 구원받은 사람도 이 세상에서는 너무나 고통과 괴로움이 많다. 그래서 서로 불쌍히 여기고 인자하게 하여야 한다. 그리고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 같이 하여야 한다.

1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_엡 5:1-2

그리스도인은 사랑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죽으심으로 자신을 한 마리 어린양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다. 그 사랑을 입은 사람은 자신을 희생하여 다른 영혼이 구원을 받게 하거나, 구원받은 형제 자매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다면 얼마나 고귀한 일이겠는가? 그것이 형제 자매들에게 큰 힘과 용기가 되고 주님의 사랑을 더욱 알 수 있는 길이 된다면 얼마나 주님이 기뻐하시겠는가?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_히 10:24-25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_벧전 4:7-8

주님이 오실 날이 가까울수록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욱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이 형제 자매를 사랑하면 그 형제 자매 속에 있는 사랑을 일깨우게 된다. 그 형제 자매는 또 다른 형제 자매를 사랑할 수 있다. 그런데 미움은 미움을 파생시킨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와 반대되는 것으로서 사탄의 역사이다. 성령의 역사는 구원받은 사람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불일듯 하게 하여 형제 자매를 사랑하게 한다. 하지만 마귀는 아직도 변화되지 않은 하찮은 육신을 격동시켜 사랑해야 할 형제 자매 간의 사랑과 교제를 깨뜨림으로 하나님의 일을 무너지게 하고 분쟁을 일으키고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다. 마귀는 구원받은 사람의 구원을 빼앗아 가지는 못하지만 신앙생활은 망쳐 놓을 수 있는데 이는 구원받은 사람의 육신을 격동시켜 그 소욕대로 행하게 함으로서이다. 이것이 마귀의 역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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