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_371] 천 날보다 더 가치 있는 한 날을 위하여







예수님이 돌아가시던 그 날, 주님께서는 이제 이 땅에서 보내는 자신의 마지막 시간을 십자가에서 힘들고 고통스럽게 보내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가장 고통스러웠던 그때에도 주님은 죄인을 구원하시는 역사를 이루고 계셨고 어떤 죄인일지라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그때 함께 못박힌 강도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도 그는 예수님을 조롱하고 악의에 찬 말들을 예수님께 퍼부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한 두 시간 만에 강도는 회개했고, 예수님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바꾸었으며 또 한 용기를 내서 자기 영혼을 예수님께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그 순간 예수님으로부터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3)는 약속의 말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날 그는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 도착한 첫 번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어떤 죄인이든지 은혜로 능히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하늘과 땅, 온 세상에 분명하게 선포하셨습니다.
강도가 구원받은 이 사건은 예수님이 이 땅에서 행하셨던 모든 기적 중에 최고의 기적과 같습니다.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일이 오직 은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죄인을 구원하시는 역사는 그 자체가 최고의 기적임에 틀림없습니다.
저는 구원받은 강도에 대한 묵상을 통해 시간의 가치를 올바로 계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강도는 태어나서 이런저런 환경에서 다사다난한 삶을 오랫동안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큰 죄를 짓고 결국 사형 판결을 받고 그날 죽은 것입니다.
그가 태어나 살아왔던 수십 년의 세월과 그날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몇 시간을 비교해 보면, 수 많은 날들 중에 단 하루이고 시간적으로도 단지 6시간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는 수없이 많은 날들을 단지 죄를 쌓고 형벌을 늘리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보낸 몇 시간을 통해서 그 모든 죄를 용서받고 천국에 가게 된 것입니다.
그가 살았던 수없이 많은 시간보다도 예수님과 함께 보냈던 그 짧은 몇 시간이 그에게는 최고의 축복이 되었습니다.
이같이 우리가 이 땅에서 죄 속에서 보낸 수천의 날들보다도 주님과 함께한 그 하루가 더 특별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천 년을 사느니 내 주와 함께 하루를 살겠네'라는 찬양 가사가 있습니다.
그 찬양 가사에 내 마음을 담아 불러보며 주님 안에서만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주님과 함께 주님 안에서 이 땅에서 이 하루를 살아가게 하소서.
- 서도석 목사님의 단상 “천 날보다 더 가치 있는 한 날을 위하여” 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