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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부동 (和而不同)
#화이부동 #화목 #화평 #조화 #고사성어

독야청청獨也靑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홀로 푸르다’는 뜻으로, 홀로 높은 절개節槪를 지켜 늘 변함이 없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말의 의미가 혼탁한 세상에서는 독불장군獨不將軍이라는 말처럼 ‘혼자만 잘나고 고귀한 척 도도하게 사는 모습’이라고 비난하는 의미로 사용될 때도 있습니다. 구원받은 이후에 우리의 거룩한 모습이 이런 식으로 비추어 지지는 않는지 생각해 봅시다.
형제자매들과 함께하는 우리 안에서는 잘살고 있다고 하지만 잘못하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만 잘살면 된다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사실 세상 인간관계 속에서 누구에게나 인정을 받고 화목을 이루며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다양한 성격과 다양한 모습이 있어서 순간적으로 방심하면 충돌하기가 쉽습니다. 원만한 인간관계를 이루려면 솔선수범率先垂範하는 희생을 치러야 합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상대에게 나 자신이 줏대 없이 흔들리는 것은 아닌가 하여 혼란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고사성어를 생각해보면서 좋은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면 언젠가는 전도의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말씀을 통해 얻은 삶의 분명한 목적을 확고하게 유지하면서, 화합을 잘 이루어 누구에게나 더불어 편안하고 칭찬받는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할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는 올바른 삶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롬 12:14~18)

유래 및 배경
和 : 화할 화, 而 : 말 이을 이, 不 : 아닐 불, 同 : 한가지 동
‘서로 조화하되 똑같이 되지 않는다.’ 남과 사이좋게 지내기는 하나 무턱대고 한데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조화를 이루되 무턱대고 동조하지는 않는다, 즉 이익을 위해 도리를 저버리면서까지 남에게 부화뇌동(附和雷同 줏대 없이 남의 의견에 따름)하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곧 대인관계에 있어 중용의 덕을 지켜, 다른 사람과의 친화를 도모하되 편당偏黨을 짓지 않는 태도를 갖는 것입니다.
논어論語 자로편子路篇에 보면, 공자는 군자를 화이부동和而不同 하는 사람, 소인을 동이불화同而不和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子曰 君子 和而不同 小人 同而不和
‘공자 가라사대, 군자는 화합和合하되 같아지지 않으며, 소인은 같아지되 화합하지 않는다.’ 즉 군자는 남들과 화합을 이루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들과 똑같아지지는 않는 반면, 소인은 남들과 똑같이 행동하면서도 그들과 화합하지는 못한다는 뜻입니다.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사냥에서 돌아올 때 간신 양구거가 수레를 몰고 나아가 경공을 맞이하였다. 이를 보고 경공이 양구거를 칭찬하자, 재상인 안영은 이를 국 끓이기에 비유하여 양구거의 행실을 비판하였다. 즉 요리사가 고깃국을 끓일 때 싱거우면 소금을 넣고, 짜면 물을 넣어야 하듯, 양구거는 임금이 옳다고 하는 것에 대해 잘못이 있으면 바로잡아 주어야 하는데, 임금이 옳다고 하면 옳다고 말하고, 임금이 그르다고 하면 그르다고 말하기 때문에 짠 국에 소금을 더 넣고, 싱거운 국에 물을 더 넣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안영은 양구거를 ‘동이불화同而不和’ 하는 소인으로 보았던 것이다.』
성경으로 풀어보는 교훈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관심치 아니하며 세상 죄악 속에서 각자 자기의 옳은 소견대로 살아왔습니다. 허무한 인생이었고 의미 없는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며 변화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유혹과 연약한 육신은 다시 우리를 죄의 법 아래로 몰아가고 구원받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원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예전의 삶을 또 살 수는 없습니다. 가깝게 지내던 주위 사람들과의 만남을 그 전처럼 계속 유지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때로는 고난과 핍박이 따르기도 합니다. 이때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믿음을 저버리면서 그들과 세상적으로 동조同調하거나 그렇다고 무조건 멀리할 수도 없습니다. 그들을 전도해야만 하는 하나님의 엄한 명령이 있기 때문입니다. 화합하되 그리스도의 선한 양심을 지키면서 함께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인간관계의 질서가 정리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내가 구원받은 후, 전에 친밀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멀어지는 것은 우정을 저버린 것이 아니요 믿음이 달라 동화同化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세상적인 욕심, 재물, 육체적인 편안함은 양보하고 희생하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부끄러운 일들은 절대로 행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화평을 주러 오신 것이 아니요 검劍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믿음 안에서 선한 싸움하기를 원하십니다.
●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잠 16:7)
●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 10:34~39)
일부 종교 지도자들이 화합을 이유로 종교를 통합하려는 것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의 신앙과는 맞지 않습니다. 또한 기독교계 안에서도 타종교에 구원의 도道가 있는 것처럼 전하는 사람들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세상과 화목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되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포기하면서까지 세상과 동화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과 화평을 위해 열심히 전도해서 주님의 믿음 안에서 하나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봅시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는 우리 모두가 서로 화평하고 하나가 되어 주님의 피로 동화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화합하나 같아질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는 화합하며 성령의 매는 줄로 하나가 되어서 완전한 일체감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고후 6:14)
●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엡 4:1~4)
●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고전 9: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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