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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넥타이

14년 3월 23일

노란 개나리꽃들이 꽃망울을 터뜨리던 따스한 봄날이었습니다.

햇빛초등학교는 그날 1학년을 맞이하느라 아주 떠들썩했습니다.
학교운동장에는 만국기가 펄럭였습니다.
현규는 감색 양복에 빨간 넥타이를 매고 한껏 뽐을 내며 엄마 손을 잡고 운동장으로 들어섰습니다.
 
키작은 현규는 맨 앞에 섰습니다. 입학식이 시작되자 현규는 애국가도 부르고 교장 선생님 말씀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리가 아플 쯤에 현규는 뽀글뽀글 파마머리 선생님을 따라 낯선 교실로 들어섰습니다. 현규는 교실에서도 맨 앞줄에 앉았습니다.
엄마는 현규가 걱정스러워서 창밖에서 고개를 길게 빼고 현규만 바라보았습니다.
 
'오호? 요 맹랑한 녀석 좀 봐라.'
선생님은 현규를 보고 속으로 큭 웃었습니다.
현규는 한 팔로 턱을 고인 채 다리를 꼬고 앉아 아빠 흉내를 내고 있었습니다.
뮈든지 다 알고 있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섭섭하게도 현규를 알아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현규는 여전히 감색 양복에 빨간 넥타이를 매고 교실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책상 위에 제일 먼저 영어 사전을 꺼내서 펼쳐 놓았습니다.
아차! 영어 사전이 거꾸로 놓였지만 현규는 입을 달싹거리며 열심히 읽고 있었습니다.
으응? 그래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아! 드디어 현규를 알아줄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뽀글이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서자 영어 사전을 거꾸로 들고 있는 현규를 보았습니다.
"아니! 현규는 벌써 영어도 할 줄 알아?"
선생님은 크게 놀래주었습니다.  그러자 현규의 어깨가 으쓱해졌습니다.
"우리 반에 영어박사가 들어왔구나."
현규의 입이 씨익 벌어졌습니다.
"박사라서 글씨도 잘 쓰겠네?"
"네!"
현규는 영어 사전을 집어넣고 얼른 종합장과 색연필을 꺼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다 짝꿍들이 있는데 현규의 옆자리는 비어있었습니다.
 
"선생님, 여기는요?"
현규는 자기 옆자리를 가리켰습니다.
"기다려 봐. 곧 올거야."
현규는 가슴을 설레며 예쁜 짝을 기다렸습니다.
며칠 후 드디어 현규의 짝이 나타났습니다. 물론 여자 아이였습니다.
얼굴이 하얗고 몸이 아주 가느다란 여자 아이였습니다.
햇빛도 한번 못 본 가느다란 코스모스 같았습니다.
 
'뭐야?'
현규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심지 잘 부탁한다."
짝꿍 엄마는 현규의 손을 잡아 주고 나갔습니다.
현규는 입을 꼭 다물고, 반 아이들이 자꾸만 현규 짝꿍만 쳐다보았습니다.
수업을 하던 선생님은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현규가 책상 밖으로 의자를 끌고 나와 앉아있는 것이었습니다.
"현규야. 왜 이렇게 나와 있어? 제자리로 들어가야지."
선생님은 현규의 의자를 주욱 밀어 넣었습니다.
한참 수업을 하다 보니 현규가 또 어느새 책상 밖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현규야, 왜 그래?"
선생님이 다정히 물었습니다. 현규는 조금 화가 난 듯 입을 꼭 다물더니 슬그머니 짝꿍에게 등을 돌리고 앉는 것이었습니다.
 
'아하!'
선생님은 그제야 눈치를 챘습니다. 현규는 짝이 싫은 것었습니다.
 
"너 자리로 들어가! 어서!"
쉬는 시간에 엄마가 들어와서 현규를 심지 옆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하지만 현규는 어느새 다시 책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네 자리로 들어가!'
엄마가 창밖에서 아무리 손짓을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현규는 하루 종일 그렇게 엄마 속을 태웠습니다.

그날 저녁 기도가 끝나자 엄마가 기다렸다는 듯이 얄밉게도 아빠에게 조르륵 일렀습니다.
현규가 학교에서 짝이 싫다며 창피한 짓을 했다고 말하자 아빠가 물었습니다.
"현규야, 짝이 그렇게 싫으니"
"당연하지."
"왜?"
"바보잖아!"
현규는 화가 나서 소리쳤습니다. 아빠 엄마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짝꿍이 불쌍하지 않니?"
"불쌍하기는 하지만 짝꿍하는 거는 싫어요."
당당하게 말하는 현규를 보고 아빠와 엄마는 아주 곤란해졌습니다.
잠시 후에 아빠가 말했습니다.
"너 오늘 빨간 넥타이 매고 학교 갔다며?"
"응, 나도 빨리 아빠가 되고 싶어."

삽화_빨간넥타이_2.jpg


"아빠가 빨간 넥타이 맨 거 멋져 보이니?"
"응."
"그런데 아빠는 멋지게 보이려고 매는 게 아니야, 아빠는 빨간 넥타이를 매면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해."
"엄마가 예수님 믿은 선물로 사줬는데 왜 눈물이 나?"
"그러니까 그 빨간 넥타이를 매면 예수님이 자꾸 생각나고 생각할수록 고맙고 그래서 눈물이 나려고 해. 그래서 속으로 '예수님 착하게 살게요' 하고 말하지."
"아빠, 그래도 예수님이 다 들으셔?"
"그럼, 예수님이 그걸 못들으시겠어?"
"........."
"너도 빨간 넥타이 맬 때마다 '예수님 착하게 살게요' 하고 말 해봐.
예수님이 엄청 좋아하실 걸. 네가 짝꿍을 싫어하면 예수님이 슬퍼하시겠지?
예수님은 너만 사랑하시는 게 아니고 네 짝꿍도 무지 사랑하시거든."
"근데 아빠, 심지는 좀 예쁘기는 한데 손이 이렇게 비뚤어졌어.
그리고 웃기만 하고 아무것도 못 해. 그래서 싫단 말이야."
"예수님은 그런 심지를 사랑하라고 하시거든."
"치ㅡ이, 그럼 예수님이 내 자리에 앉아서 심지의 짝꿍이 되어 보라고 그래."
"좋아. 아빠가 오늘 밤에 하나님께 기도할게. 그 대신 너도 심지를 좋아하게 해 달라고 기도 해야한다. "
"알았어."

다음날, 현규는 교실 문 앞에서 "예수님, 내 짝꿍을 좋아하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하려고 입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자기도 모르게 "예수님, 내 짝꿍이 안 왔으면 좋겠어요." 하고 기도를 하고 말았습니다. 현규는 교실 앞문을 살짝 열었습니다.

'으.......'

심지가 현규를 보고 웃고 있는 겁니다. 심지와 떨어져 앉고 싶었지만 할 수 없이 꾹 참았습니다. 선생님이 아이들 이름을 하나 하나 다 부른 후였습니다.

똑똑똑!
앞문에서 노크 소리가 나더니 웬 남자가 문을 열고 교실로 성큼성큼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어?"
현규의 눈이 커다래졌습니다. 회사에 가야 할 아빠가 현규네 교실에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현규 아빠는 웃으며 선생님과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뽀글이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소리쳤습니다.
"여러분! 이 분은 현규 아빠이신데 오늘 하루 동안 심지 짝꿍을 하시겠답니다."
"야, 빨간 넥타이다! 쌍둥이다!"
아이들은 현규와 현규 아빠의 빨간 넥타이가 똑같다며 떠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의자를 하나 더 가져왔습니다. 근데 아빠는 심지에게 너무너무 잘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시간마다 준비물을 꺼내주고, 책도 종합장도 펴 주고, 연필도 쥐어 주고, 손잡고 글씨도 같이 쓰고, 손뼉도 같이 치고, 안아주기도 하고, 알림장도 써주고, 책가방도 싸주었습니다.
 
씩씩! 책가방을 싸는 현규 코에서 콧바람 소리가 났습니다.
자기보다 심지를 더 좋아하는 아빠에게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 수고하신 빨간 넥타이에게 박수를!"
뽀글이 선생님이 외치자 아이들은 모두 현규 아빠에게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아빠! 나보다 심지가 더 좋아?"
집에 오자마자 현규가 가방을 툭 던지며 물었습니다.
"아빠라니?"
"그럼 빨간 넥타이라고 불러?"
"아니."
"그럼 뭐야!"
현규가 소리쳤습니다.

"예수님이라고 불러 주면 안 되겠니? 으하하!"
"아빠가 왜 예수님이야? 약 올리지마!"
현규가 울음을 터뜨리려고 하자 아빠가 현규를 아주 꽉 껴안아주었습니다.

"현규야, 잠깐만 스톱! 아빠가  어젯밤에 사랑하는 예수님께 기도 해봤는데." 
"현규 공부 잘하라고 그러지?"
"아니야."
"그럼?"
"어제 네가 예수님보고 심지 짝꿍해 보라고 그랬지?
그래서 내가 그 말을 전했거든.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오늘 나보고 학교에 가서 예수님 대신 심지 짝궁하라고 하셨어. 그래서 내가 심지 짝궁이 되어 준 거야.
그러니까 예수님이었잖아. 맞지?
예수님께서 내일부터는 현규가 직접 예수님 대신 심지를 돌보라고 말씀하셨어."
"정말?"
"너 심지를 좋아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
"아니, 기도하려고 했는데....."
현규는 말을 하려다가 얼른 입을 다 물었습니다.

"자, 지금 심부름하겠다고 기도해 볼래?"
"예수님이 정말 심부름하래?"
"그렇다니까."
한참을 머뭇거리던 현규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 나는 짝꿍이 좀 싫어요. 근데 오늘 아빠가 예수님 심부름으로 심지를 돌봐줬어요. 나보고 예수님 심부름을 하라고요? 좀 힘들 것 같은데요. 그래도 할게요. 아멘."
"우와! 우리 현규 기도 너무 잘한다!"
아빠가 짝짝짝! 박수를 치며 현규를 막 치켜 올렸습니다.

"현규야, 너는 지금부터 예수님의 심부름꾼이야."
"알았어. 내일은 예수님 심부름 조금만 할게."
현규와 아빠는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습니다.

다음날 현규는 교실 문 앞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예수님, 심지를 좋아하게 해주세요.' 하고 제대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심지 옆에 앉으니까 괜히 약속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 모두 종합장을 꺼내 주세요."
선생님 말하자 현규는 심지를 힐끗 쳐다봤습니다.
심지는 마냥 방실방실 웃고만 있었습니다.

'으이그!'
현규는 심지에게 닿지 않으려고 몸을 뒤로 재치고
오른팔을 쭉 뻗어서 심지 뒤에 있는 책가방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낚시하듯이 두 손가락으로 종합장을 쏘옥 집어 올리고 펴서
심지 앞에 놓아 주었습니다.

"우와! 오늘은 작은 빨간 넥타이가 심지를 도와주고 있네!"
현규를 본 선생님 깜짝 놀라며 칭찬을 막 퍼부었습니다.

현규는 그날 심지를 도와줄 때마다 칭찬과 박수를 받았습니다.
결국 그날 마지막으로 알림장까지 써주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현규는 이상하게도 심지가 싫지 않았습니다. 현규와 심지는 어느새 사이좋은 짝꿍이 되었고,
심지 엄마는 가끔 맛있는 간식도 갖다 주었습니다. 

'야! 빨간 넥타이!'
친구들은 현규가 빨간 넥타이를 매지 않아도 그렇게 부릅니다.

두 달 후 어느 날, 딩동! 아빠가 퇴근하는 소리를 듣고 현규는 총알같이 뛰어나갔습니다.
"아빠! 예수님께서 심부름하래."
"응? 무슨 심부름인데?"
"응, '스승의 날' 있지. 한 시간 동안 우리 반에 와서 선생님하래요. 헤헤헤."
"아이고! 예수님이 너무 어려운 거 시키신다."
아빠가 방으로 들어가더니 침대 위에 벌렁 누웠습니다.

"헤헤헤. 아빠는 예수님한테 꼼짝 못해."
"당근이지.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어디라도 달려가야지."
"아빠, 친구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우겨. 바보 친구들에게 예수님이야기를 좀 해줘."


삽화_빨간넥타이_1.jpg


"알았어! 네가 기도해주면 예수님이 멋지게 할 수 있을 거야."
"당근이지. 헤헤헤."
"예수님, 예수님, 있잖아요. 친구들이 하나님 이야기를 잘 듣게 해주세요.
음, 심지가 우리 교회로 와서 감사합니다.
아, 참! 우리반 모두 빨간 넥타이를 매면 좋겠어요. 아니, 예수님 심부름하게 해주세요.
그리고 저 감기도 얼른 낫게 도와주세요. 예수님, 킁킁!"

현규는 툭하면 예수님을 막 불러 댑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조금도 귀찮아하지 않습니다.
현규가 뒤죽박죽 기도해도 예수님은 다 알아듣는답니다.

아빠는 가끔 현규와 똑같이 빨간 넥타이를 매곤 합니다.
그것은 현규가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않고 살아가게 해 달라는 기도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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