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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커를 씹어먹은 아이

13년 12월 24일

나는요.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은가 하면요. 우리 할머니가 제일 좋아요.

 

"할머니-"
하고 내가 부르면


"아가, 배고프지? 어이구, 눈에 잠도 주렁주렁 매달렸네."
하면서 할머니는 벌써 내 마음을 다 알고 있어요.
할머니는 나에게 밥도 먹여주고, 세수도 시켜주고, 잠도 재워주고, 업어주기도 해요.  

 

"어머니, 이제는 혼자 하게 내버려두세요. 다섯 살이란 말예요."
엄마는 할머니가 나를 아기 취급한다고 막 뭐라고 해요.

 

"아이구, 그런 소리 마라. 내가 해준 게 뭐 있다고."
할머니는 그럴 때마다 나를 치마폭에다 꼭 싸안아줘요.

그럴 때마다 엄마는 할머니 뒤에 붙어있는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곤 해요.

 

나는 강아지처럼 할머니 치마꼬리만 잡고 졸졸졸 따라다녀요.
할머니도 그런 내가 제일 좋대요.

 

어느 주일날이었어요.
나는 할머니 손을 잡고 토끼처럼 깡충거리며 엄마 아빠를 따라 교회로 갔어요.


할머니가 말씀을 듣는 동안 나는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거든요.

 

그런데 교회로 들어서자 엄마는 갑자기 내 손을 잡아챘어요. 그러더니 나를 어디로 막 데려가는 것이었어요.

 

"어?"
엄마가 어떤 문을 열었는데 그 곳에는 낯선 선생님과 친구들이 많이 있었어요.
"넌 이제 다섯 살이야. 이제 유치부 친구들하고 같이 지내야 돼."
엄마는 나를 데리고 들어가려고 했어요.

"싫어요! 안 들어갈 거야!"
나는 겁이 나서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티었어요.
하지만 엄마는 나를 강제로 끌고 들어가려고 하였어요.

 

"할머니-! 할머니-!"
나는 할머니를 애타게 부르며 버둥거렸어요.


"아가! 할머니 여기 있다."

어느새 뒤따라 달려온 할머니가 내 손을 꼭 잡았어요. 우리는 서로 부둥켜안았어요.
그런데 무슨 일이지요? 우리를 바라보던 엄마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어요.

"엄마가 왜 울지?"
우리는 말없이 서 있었어요.

잠시 후 할머니와 나는 어정어정 유치부로 들어갔어요.
할머니와 나는 맨 뒤에 앉아서 재미있는 연극을 보았어요.


꼬마 다윗이 던진 돌을 맞고 나쁜 놈 골리앗이 쿵! 하고 넘어질 때 할머니와 나는 신나게 박수를 쳤어요.

"자, 이리 와서 같이 공부해요."
연극이 끝나자 선생님이 내 손을 잡아끌고 아이들 사이에 앉혔어요. 내가 할머니 손을 놓지 않자 할머니도 끌려와서 내 옆에 앉았어요.

 

선생님은 예쁜 물감 통들을 가지고 오더니 우리들 앞에 하나하나 열어 놓았어요.  

"자, 오늘은 이 물감들을 가지고 하나님이 만드신 이 세상을 한 번 그려볼까요?"

선생님은 하얀 종이와 붓을 주면서 뭐든지 마음대로 그려도 된다고 했어요.

알록달록한 물감을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하자 내 가슴이 막 뛰었어요. 나는 붓을 꽉 움켜잡고 물감을 노려보았어요.

먼저 빨간 물감을 푹 찍어서 흰 종이에 푹! 푹! 푹! 찍어보았어요. 그랬더니 엄청 큰 꽃들이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렸어요.

 

흐으응. 이렇게 재미있는 건 처음이었어요. 다시 파란 물감을 찍어서 쓰-으-윽 그어 보았어요. 우아! 파란 풀밭이 나타났어요.

히이, 방바닥까지 풀밭이 되어버렸어요. 이번에는 노란 물감으로 동그라미를 그렸어요. 해님이 방긋 웃었어요.

으흐흥. 하나님도 이 세상을 만드실 때 이렇게 기분이 좋았을까요?

 

"어머나! 너무 잘 그렸다." 

선생님이 내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림을 그리고 나자 선생님이 상이라며 손톱만한 종이를 하나씩 나누어주었어요. 아이들은 그것을 "스티커"라고 했어요. 선생님은 나에게 스티커를 두 개나 주었어요.

 

"우와! 좋겠다."
아이들이 나를 부러워했어요.

"이거 뭐 하는 거지?"
나는 내 손등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내려다보았어요.
아이들이 쳐다보고 있었어요.

"에이!"
나는 스티커를 떼서 이마에 턱 붙였어요.

"우헤헤!"
아이들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웃자 나는 다시 스티커를 떼었어요.

"이걸 어쩌지?"
아이들이 자꾸만 나를 쳐다보자 나는 그만 스티커를 입 속으로 쑥 집어넣고 말았어요.

"우헤헤헤!"
"우와! 스티커 먹는다!"
아이들이 소리쳤어요.
그 바람에 나는 스티커를 정말 팍팍 씹어 먹어버렸어요.

 

"우헤헤헤! 진짜 먹었다!"
"스티커를 먹었어. 에헤헤헤."
아이들이 발을 꽝꽝 구르며 웃어댔어요. 

삽화_2.jpg

 

스티커를 씹어 먹은 내 입에서는 계속 이상한 맛이 났어요. 퉤! 퉤!

다음 주일날이었어요.
나는 스티커가 무서워서 교회에 가지 않겠다고 온 집을 뱅글뱅글 도망 다녔어요. 그러자 할머니까지 내 옷을 들고 나를 잡으러 쫓아왔어요.

 

나는 어쩔 수 없이 옷을 입고 할머니 손을 잡고 교회로 갔어요.
그런데 유치부에 들어서자 내 눈이 둥그래졌어요. 글쎄 우리 선생님 무릎에 예쁜 여자인형이 앉아 있는 거였어요.


정말 동화책에 나오는 공주랑 똑 같았다니까요.

"어서 와."
선생님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며 예쁜 인형을 내 옆에 나란히 앉혔어요.

"우하!"
나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져서 인형 옆에 바싹 붙어 앉았어요.

 

"어? 내 자리가 없네. 같이 앉을까?"
신발을 넣느라고 늦게 들어 온 할머니는 인형을 살짝 밀어내려고 하였어요.

"할머니는 이제 나가있어도 돼요!"
나는 얼른 할머니를 밀어냈어요.

"아가? 내가 나가도 되겠냐?"
할머니 눈이 커다래졌어요.

"할머니는 이제 나가도 된다니깐요!"
나는 할머니를 막 밀어냈어요.

"오냐, 알았다."
할머니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가방을 들고 나갔어요.
 


"너 이름이 뭐야?"
나는 인형에게 최고로 친절하게 말했어요. 그런데 인형이 고개를 획 돌려버렸어요.

"너 누가 데려다 줬어? 너네 엄마가 데려다 줬어?"
나는 인형의 머리를 잡아당겼어요.

"갈 거야!"
갑자기 인형이 벌떡 일어났어요.

"어디 가?"
나는 얼른 인형의 손을 잡았어요.

"싫어!"
인형이 나를 뿌리쳤어요.
나는 다시 손을 잡았어요.

"엄마-!"
인형이 울려고 했어요.

"울지 마."
나는 인형에게 뽀뽀를 해 주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났어요.

"얼레리 꼴레리 뽀뽀했대요!"
"얼레리 꼴레리 뽀뽀했대요!"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노래를 했어요. 그러자 인형이 막 울기 시작했어요. 나는 머리만 벅벅 긁었어요.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얼레리 꼴레리 뽀뽀했대요!"
아이들은 더 크게 노래를 불렀어요.

삽화_1.jpg

 

글쎄 우리 선생님까지도 나를 보고 쿡쿡 웃는 거였어요.
나는 기분이 나빠서 아이들을 발로 막 찼어요. 
문밖에 있던 할머니가 뛰어 들어와서 나를 말렸어요.

집으로 오는 길에 할머니는 내가 말을 시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화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내가 아까 할머니를 밀어낸 것이 섭섭했던 것 같아요.


 

갑자기 할머니가 이상해 졌어요. 내가 동생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대신 동생이 되려나봐요. 글쎄 나보고 자꾸만 놀아달라고 조르는 거예요.

 

"아가, 우리 학교놀이 할래?"
"싫어요!"
"그러지 말고 우리 학교놀이하자. 응? 할머니는 학교놀이 하고 싶단 말이야."
"알았어요. 그럼, 내가 선생님 할 거예요!"
"그래. 그래."
내가 허락을 하자 할머니는 아기처럼 좋아했어요.

"자, 어서 와서 줄을 서세요."
"네. 선생님."
할머니 학생은 내 앞에 와서 똑바로 섰어요.

"제자리에 앉아!"
"네!"
할머니 무릎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어요.


 

"아니야!"
"네?"
"하나! 둘! 하고 앉아야지."
"네!"

할머니는 다시 우두둑하고 일어섰어요.

 

"앉아!"
"한나! 둘!"
"아니야. 하나 둘!"
"하나! 둘!"
"좋아요. 이번에는 노래를 불러봐요."
나는 엄마가 치는 피아노 뚜껑을 열고 뚱당 뚜당당 건반을 막 두드렸어요.

"……?"
할머니는 가만히 쳐다보기만 하셨어요.

"빨리 노래해요!"
내가 소리쳤어요.

"무슨 노래를 할까요?"
할머니가 겁먹은 듯이 물었어요.

"아니, 이 노래도 몰라요?"
나는 더욱 힘껏 건반을 꽝꽝 두드렸어요.

 

"하늘에는 별들이 모여 살고여 우리들은 유치부에 모여 살아여˜"
할머니는 노래를 불렀어요.


 

"아니야. 무용하면서 불러야지."
"하늘에는 별들이 모여 살고여˜"
할머니는 두 손을 마주 잡고 무릎을 굽실거리며 노래를 불렀어요.

 

"에구머니!"
갑자기 엄마 소리가 났어요.

시장에서 돌아온 엄마가 문을 열었다가 할머니를 보고는 얼른 문을 쾅! 닫아버렸어요.
"어머니, 손자한테 쩔쩔매면 애 버릇만 나빠져요."
엄마는 저녁 식탁에서 할머니에게 항의를 했어요.

할머니는 아까 무용하던 걸 들켜서 그런지 아무 말도 못했어요.

"너 다시는 할머니 괴롭히지 말아. 알았어?"
엄마가 나를 노려보았어요.

 

"할머니가 놀아달라고 했단 말이에요!"
나는 당당하게 소리쳤어요.

"거짓말!"
엄마는 내 머리를 꽁 쥐어박았어요.

"이잉! 정말이라니깐요."
"할머니한테 그런 걸 다 시키고."
엄마는 또 내 머리를 꽁 쥐어박았어요.

"엄마 미워!"
나는 억울해서 황소처럼 씩씩거렸어요.

 

"정말 내가 놀아달라고 했어. 정말 그랬다니까."
"어머니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세요."
엄마는 끝까지 우리들의 말을 곧이 듣지 않았어요.

 

"엄마 나가고 없어. 걱정 마."
"싫어요! 나만 혼나라고?"
"괜찮아. 내가 말려줄게."
"정말요?"
"걱정 말라니까. 들키면 내가 말려줄게"
"알았어요."

우리는 매일 매일 엄마 몰래 열심히 놀았어요.
내가 의사선생님이 되어서 할머니 엉덩이를 딱 때리고 주사를 놓기도 하고, 할머니가 밀가루를 반죽한 걸로 소꿉놀이 그릇도 만들었어요.

 

색종이로 비행기랑 집이랑 꽃을 접기도 하고, 색종이를 오려서 붙이기도 하고, 색칠놀이도 하고, 어떤 때는 동화책도 읽고 왕자 놀이도 하고,

별별 거 다하고 놀았어요.

 

내가 할머니랑 놀아주고 나면 할머니는 나에게 꼭 스티커를 주었어요.

냉장고에 붙어있는 과일 바구니 그림에 스티커가 꽉 차버리자 할머니는 그 스티커하고 맛있는 과자를 바꾸어 주었어요.

 

우아! 다음에는 더 좋은 거랑 바꿔준대요.그런데 할머니는 참 이상해요.
엄마에게 혼나고도 매일 나보고 놀아달라고 그래요.
엄마가 외출하기만 하면 할머니는 이때다 하고 나를 졸라요.

"아가, 우리 소꿉놀이하자."
"또요?"

나는 교회에서 준 스티커를 부지런히 모아서 머릿돌에 붙였어요. 그때 씹어먹은 두 개의 스티커가 아쉬웠어요. 하지만 걱정 없어요.

친구들 중에서 내가 스티커를 제일 많이 받았으니까요.

어떻게 해서 그렇게 많이 받았냐고요? 

할머니하고 소꿉놀이 할 때처럼 인사도 공손히 하고, 대답도 예쁘게 잘하고, 색칠도 잘 하고, 줄도 잘 서고, 친구들을 잘 도와주니까

선생님이 스티커를 많이 주었어요.

"아이구! 우리 아가 머리통이 이만큼이나 커졌네."
할머니는 하나님 생각이 꽉 차있는 내 머리통이 기특하다고 해요.
할머니는 매일 내 머리를 붙잡고 기도해요. 그러면 정말로 내 머리 속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는 것 같았어요.  

 

"바울아!"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할머니는 내 진짜 이름을 불렀어요.

"네, 할머니."
나도 공손하게 대답해요.

 

아가라는 이름을 못 들어서 아쉽기는 하지만 엄마 아빠가 지어준 "바울"이라는 이름을 들으니 내가 어른이 된 것 같았어요.
바울이 된 다음부터 나는 밥도 혼자 잘 먹고, 세수도 잘하고, 할머니를 조르지도 않고 뭐든지 혼자 해요. 강아지처럼 할머니 치마꼬리에 붙어 다니지도 않아요.

엄마는 나보고 홀로 서기에 성공했대요.
홀로 서기가 뭔지 모르지만 엄마는 그게 다 할머니 덕분이래요. 그런데 할머니는 그게 다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 덕분이래요.

내 생각에는 내가 스티커를 씹어먹지 않고 잘 모아둔 덕분인 것 같은데 말예요. 

 

어쨌든 내가 할머니를 졸졸 따라다니지 않으니까 할머니는 요즘 엄마하고 하루 종일 붙어 다니며 소곤소곤 아주 재미있게 지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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