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받은 후 10여 년을 성경과 떨어져 생활했습니다. 다시 교제에 붙게 되었는데 계속해서 구원의심이 날때 어떻해야 할까요?
우선 구원을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의 다른 점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성경이 보고 싶고 배우고 싶고, 말씀이 듣고 싶어집니다. 꿀송이보다 달다고 하는 말씀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갓난아이가 젖을 사모하듯 그렇게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둘째, 세상을 보는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이것은 아주 기본적인 것입니다. 과거에 그렇게 좋아하던 세상 것에 대한 관심이 없어집니다. 오직 소망을 이 세상에 두고 어떻게 하면 좀더 즐겁고 행복하게 살 것인가 하는 것만 고민하고 노력했는데 구원받으면 그런 것들이 시시하게 보입니다. 사도 바울도 ‘내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이제는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소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았다는 것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외국으로 이주하기 위한 이민 수속이 완전히 끝난 사람은 자기 나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 하겠습니다.
셋째, 다른 영혼을 불쌍히 여깁니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보면 대통령도, 대기업 회장도, 미스코리아도 불쌍하게 보입니다. 몇 일 피다 떨어지는 꽃과 같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넷째, 구원받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며 그래서 교제를 사모합니다.
이것은 생리적인 현상처럼 당연한 것입니다. 원수의 땅에서 동족을 만나는 것 이상으로 만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 아버지의 형제자매로서 천국에서 영원히 같이 살 사람들인데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사람이 잘 생기지 못하고 많이 배우지 못했어도 육신적인 차이와 상관없이 만나고 싶어합니다.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고린도후서 5:16
이 말씀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다섯째, 감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영원히 멸망 받을 죄인을 건져 주셨는데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물 속에 빠진 나를 건져 준 사람의 은혜를 잊을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그 감사는 입으로뿐 아니라 생활로도 나타납니다.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로마서 14:7
주님을 위해 간절히 살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여섯째, 양심이 밝아집니다.
과거에는 별로 죄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 큰 죄로 느껴집니다. 양심이 예민해지고 밝아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과 가까워졌다는 증거입니다. 주님의 성령이 내 안에 계시고,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해서 돌이켰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의 기준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과거에는 아무렇게나 살았지만 이제는 아무렇게나 살 수 없습니다. 주님이 싫어하는 것을 나도 싫어하고 주님이 좋아하는 것을 나도 좋아하는 등 삶의 표준이 달라집니다.
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고린도후서 6:17
그래서 나쁜 친구하고 같이 행동할 수가 없습니다. 나쁜 친구도 끊고 좋지 못한 취미도 버리고 내게 아무리 수지맞는 일이 생겨도 그리스도인으로서 할 수 없는 것은 그만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생활을 정리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일곱째, 행동이 달라집니다.
위의 여섯 가지에 대한 결과입니다. 영혼을 불쌍히 여기므로 전도를 하지 않을 수 없고 양심이 밝아지니까 죄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형제를 사랑하니까 형제를 도와주고 싶고 사랑이 우러나오는 등 모든 것이 행동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속에 생명과 성령의 능력이 들어와서 마음이 변화되고 생활이 변화되며 속 사람이 점점 자라납니다. 탄생한 후 자라는 과정이 있듯이 말입니다. 그것이 정상적인 생활입니다.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거듭났다고 했으니까 항상 살아서 움직여야 됩니다. 태어날 땐 태어나서 좋지만 후에는 기어다니고 서고 걸어가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도 구원받은 후 점점 변화되고 자라는 성장이 있어야 우리도 기쁘고 하나님도 기뻐하십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질문하신 분은 간증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믿게 되면 즉시 구원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를 아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생활을 보고 압니다.
18 혹이 가로되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야고보서 2:18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야고보서 2:26
그런 관점에서 질문하신 분의 구원이 의심스럽습니다.
만약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징계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며,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언제나 돌이키는 힘이 있습니다. 죽은 사람이 일어날 힘이 없어도 자는 사람은 일어날 힘이 있습니다. 돼지나 양이 길을 가다 구렁에 빠지면 돼지는 눕지만 양은 펄쩍 뛰어 나옵니다. 이처럼 구원받은 사람은 세상에서 뛰쳐나오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로 고민하기보다는 교제 안에서 계속 말씀을 배우면서 말씀을 통해 구원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집회에 참석하여 말씀을 계속 들어야 합니다. 그때 구원이었다면 더 확신이 생기게 될 것이고 구원이 아니라면 말씀을 배우는 가운데서 구원받을 기회가 올 것입니다.
전에는 내가 좋았었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안 됩니다. 현재 이 순간에 구원의 확신과 믿음 생활의 증거로 연결이 되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므로 과거 현재 미래가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에 구원해 주신 주님과 장차 재림하실 주님 그리고 현재 나와 함께 계시는 주님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분의 경우 말씀 안에서 구원을 다시 확인하셔서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다시는 세상으로 돌아가서는 안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