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란트 비유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먼저 달란트 비유에서 각각 그 재능대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준 것은 구원과는 상관없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종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겼다는 것은 유대인을 하나님의 선민으로 구별하시고 그들로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 답게 살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주신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맡기신 것이 어떤 것일까요?
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_롬 3:1
그리고 그들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이 있었고 심지어 예수님도 육신으로 하면 유대인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육신이 이루어진 곳도 유대 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었다고 핑계할 수 없습니다. 곧 하나님은 그들의 영혼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4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_사 5:4
이 말씀처럼 좋은 포도가 맺힐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최선의 배려를 해 주신 것입니다.
달란트가 달랐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유대인이라 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왕, 어떤 사람은 선지자, 혹은 서기관, 혹은 평범한 사람 등으로 위치나 배경, 능력을 다르게 해주셨다는 뜻입니다. 선지자가 많은 능력을 받아서 하나님께 많이 남긴 것이나, 일반 백성이 적은 능력을 받아서 적게 남긴 것이나 그에 대한 칭찬은 같습니다. 하나님은 양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충실의 정도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능력과 재능을 많이 부여 받은 사람은 그만큼 책임이 큰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자는 즉시 그것으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를 남겼고,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것으로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여기에서 ‘남겼다’라는 말 속에 구원이 포함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원을 받지 아니한 사람은 하나님께 남긴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1자 앞에 0을 아무리 써도 무효이듯이 구원을 받기 전의 어떤 선행도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1자 뒤에 0이 있으면 효력이 있듯이 구원 받은 이후의 올바른 삶은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다섯을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이 둘 남겼을 때 이들에게 한 주인의 칭찬을 똑 같았습니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_마 25:21-23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는 구원을 받은 이후에 자기의 능력 범위에서 최선을 다했을 때 하나님이 동일하게 칭찬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_롬 12:3
하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이제 문제는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인데, 이 사람은 장사할 생각을 하지 않고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결국 이 사람은 바깥 어두움에 내어쫓겼는데 이는 곧 지옥에 떨어진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사람에게도 동일한 성경이 주어지고, 모든 영광의 언약들이 약속되어 있고 구세주까지 오셨는데, 그리스도를 믿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모든 것을 묻어두고 육신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건만 육체만을 위해 살았고, 위를 보도록 지음 받았지만 땅만 바라보고 살았고, 영원한 하늘의 영광이 약속되어 있었건만 순간적인 현세에 파묻혀 살았습입니다. 그가 맞이할 곳은 바깥 어두움밖에 없었습니다. 유대인이었지만 그들도 구세주를 받아들여야 했던 것입니다.
이방인에게 적용시켜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세상에 나게 하실 때, 그들에게 하나님을 찾고 발견할 수 있는 길을 주십니다. 이방인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그들에게 하나님을 알 만한 마음, 양심,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또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은 보이지 않더라도 그 만드신 만물을 보면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해 놓으셨습니다.(롬 1:20) 하나님은 이방인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재능을 허락하셨고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마음에 만족케’(행14:17)하셨습니다. 그리고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그리스도를 믿고 믿지 않는 책임은 묻지 않으셨으나 이제는 어디든지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습니다.(행 17:30) 이는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분명한 증거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방인도 그리스도를 믿는데 나아가지 않으면 영원한 멸망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알 수 없었다고 핑계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22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_요 15:22
이 달란트 비유의 근본 교훈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각각 그 능력에 따라, 재능에 따라 구원 받을 수 있는 여건을 하나님께 부여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든지 자기에게 주어진 모든 재능을 이용하여 구원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각오하고 구원을 얻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전심전력하지 않거나, 구원 받기를 거절한다면 영원한 멸망에 처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변에 양심의 갈등을 겪고 있고,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고 있으며, 영원한 것을 사모하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진리를 막고 육신만을 위해 살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영원한 멸망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땅에만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19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_빌 3: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