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서 좋아하는 전도인들의 말씀만 들으려고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는 동시에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같은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형제자매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영혼이 깨끗하게 되면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게 됩니다.
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베드로전서 1:22
거짓이 없는 사람은 육신적이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입니다. 이는 당연한 생명의 역사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분들이 올바른 말씀으로 자신의 신앙을 붙들어 줄때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그분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의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존경하니까 순종하며 따를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말씀 전하는 사람을 별로 존경하지 않고, 별로 감사해 하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브리서 13:17
말씀 전하는 사람이 즐거운 마음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들의 기쁨이 말씀을 배우는 사람들이 주님을 위해 사는 것을 볼 때 큰 기쁨이 있습니다. 바울사도도 교회를 위해서 항상 근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요한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요한3서 1:4
이와 같이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항상 교회를 염려하고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바울도 갈라디아 성도들을 어머니가 자녀를 사랑하듯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교회의 사람들은 바울을 사랑하고 존경하고 눈이라도 빼어줄 것처럼 대우하였습니다. 바울사도가 눈이 좋지 않았으므로 갈라디아 사람들은 그를 위해 눈이라도 빼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존경했습니다.
15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갈라디아서 4:15
브리스가와 바울은 바울을 위해서 목이라도 내어놓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롬 16:4) 바울은 그 누구보다 많은 고난을 받았던 사람이지만, 반면에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을 위해 기도하고 도와주고 함께 수고한 사람들이 많았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이 바울과 갈라디아 성도들 사이를 이간질하여 갑자기 그들이 바울을 원수처럼 대하게 되었습니다.
16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17 저희가 너희를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 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 내게 하려 함이라갈라디아서 4:16-17
대개 전도인을 향해 등을 돌리는 경우 그 사람의 신앙이 잘못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잘못 가르치지도 않고, 특별히 큰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자기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도인을 미워하고 배척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주님이 보낸 사람을 영접하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서도 바울이 그곳에서 복음을 전해서 구원받는 사람들이 생겨났지만 바울을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육신에 빠져서 신앙적으로 아직 미성숙한 그들이 바울사도를 판단하는 것은 큰 모순이었지만, 바울은 판단받는 일이 큰 일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모든 것을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의 성도들 대신 멀리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고린도교회에는 큰 징계를 받아 죽은 자들도 생겼고 병들고, 약해진 사람들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존경하지 않으면 말씀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씀전하는 사람과 형제자매 사이를 이간시키기도 합니다. 큰 죄입니다. 마귀의 올무에 걸린 그 사람은 말씀을 들을 수 없고 결국은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이간은 얼마나 무서운 죄인지 모릅니다.
말씀전하는 사람에 대해서 말을 함부로 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특정한 전도인만을 좋아하는 것은 안 됩니다. 그 사랑과 존경은 인간적인, 육식적인 사랑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모든 복음의 일꾼들을 똑같이 존경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인정적으로 가까워지면 안 됩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구분짓는 것 없이 똑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한 몸입니다. 절대로 특정한 사람들끼리 구별지어서 모이면 안 됩니다.
소제물에 누룩과 꿀을 섞지 말라고 되어 있습니다.
11 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레위기 2:11
누룩은 죄를 의미하고, 꿀은 인정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초월해야 합니다. 특정인을 좋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특히 청년들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어른들보다 판단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더 조심하고 어른들의 지혜를 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기 때문에 어른들을 존경하고 배울려고 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