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
목록

계 3:20을 근거로 하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통해 구원을 인정하는 일부 교회의 전도방법은 성경적으로 합당한지요?

요한계시록 3:20
20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복사
텍스트 읽어주기
20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이 말씀을 근거로 나는 예수님을 영접해서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렇게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여부에 대한 질문입니다.

예전에 같이 전도하던 분 중에 이런 식으로 전도하던 분이 있었습니다.

한번도 교회를 다녀본 적이 없는 청년에게 하나님과 인간의 죄와 지옥에 대한 기본적인 교리들을 이야기해준 후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데 이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따라서 영접기도를 하게 만듭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영접하였으니 구원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전도방법입니다. 비록 이 사람이 영접하겠다고 기도했다고 하지만 그렇게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또 어디에서는 구원을 받으실 분 일어나 나오라고 한 후에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해주고 예수님을 영접하기원하면 영접하라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어느 집회 때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믿고 있던 한 사람이 우리 집회에 참석하여 이사야 53장의 말씀을 듣는 중에 구원을 받았던 일도 있습니다.

이 사람의 간증을 듣고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던 다른 사람도 자신에게 거듭났다, 구원받았다, 영접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믿고 있으나, 죄사함을 받았다는 확신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후 상담을 통해 확실히 구원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런 영접식 전도방법을 사용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말씀을 충분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 마음으로부터 구원을 거부하고 있다가 자신을 굴복하고 말씀을 들을 때는 구원을 받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자기의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열수 없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분도 주님이시지만 사실은 그 마음을 열어 주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14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사도행전 16:14

바울사도가 빌립보에 가서 전도할 때에 강가에 모인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는데, 거기에 두 아이라 성에 사는 자주옷감 장사인 루디아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을 주께서 열어서 바울의 마음을 청종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마음을 열어 주시는 분은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또 바울의 말씀을 깨닫게 하신 분도 주님이십니다. 많은 여자들이 말씀을 들었지만 루디아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러 사람이 말씀을 같이 들어도 어떤 사람은 말씀을 깨닫고 어떤 사람은 깨닫지 못합니다.

평소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있었고 말씀을 들을 때 간절한 마음이 있는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시듯이 구원 받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사람의 마음을 열어주십니다.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성령은 말씀을 듣고 깨달을 때 들어오십니다. 동시에 마음에 들어오시면서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마음에 확실한 깨달음이 있을 때 성령께서 믿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를 계시된 믿음이라고 합니다.

23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갈라디아서 3:23

감추어져 있던 사실을 열어 믿게 해 주시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마음에 오신 줄 몰라도 그 때 들어오셨습니다.

주님을 영접하는 것은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사도행전 17:11-12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바울이 말씀을 전할 때 핍박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베뢰아에 가서 말씀을 전했더니 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정말 옳은지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을 때 믿어집니다. 자신이 영접했는지 어쨌는지 확실히 몰라도 말씀을 깨달을 때 성령이 오십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도와주셔야만 주님을 영접할 수 있다는 것과, 말씀을 듣고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은혜를 확실히 깨닫는 것이 영접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 5:24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 구원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로마서 10:9-10

교회를 어느 정도 다니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것 등의 기본적인 내용은 다 믿습니다. 이를 믿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았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살아나셨다는 것만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면 구원 받게 하는 것은 쉬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요한복음 3장 16절만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복음 3:16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만 알면 구원받았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3장16절만 가지고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이 말씀은 구원의 말씀을 축소한 것이지 내용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떤 능력과 비밀과 약속이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했다고 하는데 세상이 무엇인지, 왜 사랑하셨는지를, 이처럼이 얼마 만큼인지 모르는데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을 성경을 통해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나면 요한복음 3장 16절의 내용이 이해가 됩니다.

얼마나 많은 내용이 담겨 있는지 그 때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주로 시인한다고 입으로 주님을 부른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0:14-15

그러나 주님의 이름을 부르려면 들어야 하고 들으려면 전파하는 자가 있어야 하며 이 전파하는 자는 주님이 보내시는 사람입니다. 그냥 주님의 이름을 부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야 믿는 것입니다.

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로마서 4:25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를 깨달을 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성경 구절만 가지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영접식 구원의 문제점이라고 하면 구원을 받지 않고 영접했다고 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선 그 열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6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 7:16-20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야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성령이 그 안에 없으면 새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하는 기본적인 증거가 있습니다.

구원을 받았다면 자기의 죄를 담당하시고 저주와 형벌을 담당하신 예수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후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참으로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의미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바칠 만큼 그 무엇보다 주님을 더 사랑합니다.

만약 구원받은 사람이 모든 것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구원이 아니든지 양심을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께 순종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합니다. 말씀이 꿀송이 보다 달다는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말씀을 보고 듣게 됩니다.

구원을 받고 나면 말씀 듣는데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이것이 구원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또 한 가지는 구원 받은 형제자매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새 계명을 저절로 지키게 됩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끼리 인격적인 사랑을 합니다. 인간적인 모든 조건을 초월해서 구원 받았다는 이유 때문에 사랑합니다.

형제, 자매라는 말이 그렇게 좋을 수 없습니다. 주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도 사랑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천국에 대한 소망이 확실하기 때문에 그렇게도 좋게 보이던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시시하게 보입니다.

어린 아이가 모래와 흙으로 소꿉장난하다 엄마가 맛있는 것 먹으라고 부르면 바로 손 털고 다 버리고 가는 것처럼 이 세상의 것은 소꿉장난처럼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이 세상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있어야 할 것을 갖추기 위해서 살지만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습니다.

또 한 가지는 다른 영혼들을 보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습니다.

구원 받지 못한 부모 형제님을 어떻게든 전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친척과 친구들 심지어 자기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도 구원하기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합니다.

이 구원이 얼마나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남의 영혼 구원 받는 것도 귀하게 여깁니다.

자기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중요한 목적은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자기가 하는 직장일은 수단이고 진짜 일은 전도의 일임을 알게 됩니다.

전도서를 쓴 솔로몬이 자신을 전도자라고 밝혔듯이 전도하는 일을 가장 귀중하게 여깁니다.

마치 가슴에 폭탄을 않고 사람들 앞에 자폭하는 이스람인들처럼 그리스도인들도 다른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면 그보다 큰 영광은 없을 것입니다.

나 한사람 죽어서 다른 영혼을 살릴 수 있다면 이는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구원 받았다고 하면서 말씀을 사모하지 않고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더 좋아하고, 천국에 대한 소망보다 세상에 대한 욕망이 더 크고, 구원 받지 못한 가족, 친척들을 전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하나도 없는 이런 사람은 정말 구원을 받았을까 의심해보아야 합니다.

구원 받지 않았다는 것을 깨우치는 방법도 언제 어떻게 구원 받았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보고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는지, 믿음에 따른 행함은 어떻게 나타나는지 대답하도록 유도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구원 받았으면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변화가 없으면 생명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구원 아무리 받았다고 해도 구원 받은 사람이 옆에 있으면 자기가 구원 받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압니다. 자기와는 다른 즐거움과 기쁨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답답함을 느끼게 됩니다.

요한 웨슬레가 배에서 모라비안 교도들의 모습을 보고 자기의 믿음과 다르다는 것을 보고 고민하도 구원을 받았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은 무조건 구원 받은 교회에 한 말씀은 아닙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더웁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 미지근한 교회였습니다. 부자라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는 영적인 소경이자 벌거숭이상태의 그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고 하고 흰옷을 사서 입고 안약을 사서 보게 하라고 했습니다. 구원을 받으라는 말입니다.

그들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실제 그 당시의 교회이자 시대적으로 마지막 시대에 해당하는 교회의 모습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외모는 부유하다 속은 완전히 잘못되어 있는 기독교 전성시대의 모습입니다.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는 말씀은 구원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20절의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주님의 음성은 구원을 받으라는 음성입니다. 물론 구원을 받고도 주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않고 자신의 생애를 완전히 바치지 않는 자들에게도 해당하지만, 구원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구원 받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바쳐야 하겠습니다.

읽어 오는 중...
처리 중...
발송 중...
검색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