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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0장 26-29절은 구원 받은 사람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까?

히브리서 10:26~29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히브리서 10: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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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히브리서 10:26-29

여기서도 히브리서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쓴 편지임을 알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고 했는데, 이 말씀처럼 다시 속죄 받을 기회가 없다면 큰일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온 세상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시고 그 죄에 대한 심판을 받으시기 위해서입니다.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 하셨다(베드로전서 3장 18절)’,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다(고리도후서 5장 14절)’,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히브리서 9장 12절)’, ‘우리 죄만 위한 것이 아니고온 세상의 죄를 위해서 화목케 하는 재물을 드리셨다(요한일서 2장 2절)’와 같은 말씀들이 그것을 보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장 18절에는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히브리서 10:26

에서 ‘이 진리를 아는 지식’은 바로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가리킵니다. 


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예수님은 인간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 위해 오셔서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 이끌겠노라’(요한복음 12장 32절)는 말씀처럼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그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진리는 바로 그 길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17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18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10:17-18

주님의 죽으심으로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는 이 영원한 구원이 곧 진리입니다. 이 진리를 깨달으면 생명을 얻고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길이 개인적으로 열리는 것입니다.

‘짐짓 죄를 범한다’는 것은 그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았고 이것을 알면서도 믿지 않은 죄를 말합니다. 이것은 마치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먹지 않고 굶어 죽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는 말에서, ‘죄’는 도덕적인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이루신 사실을 알면서도 마음에 그것을 믿지 않는 죄를 말합니다. 알면서도 고의로 믿지 않는 그것이 곧 ‘짐짓 짓는 죄’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온 세상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시고 하나님이 우리 죄를 기억하지도 않는다는 말씀을 들었으면서도 믿지 않는 사람이 요즘에도 있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데도 그것을 일부러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처럼 ‘짐짓 죄’를 범한 사람, 즉 예수님의 피를 고의로 배척하는 사람의 죄는 무엇으로 사할 수 있겠습니까? 이 경우에는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습니다. 이것은 알고서도 믿지 않는 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은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그 마음 속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 두려움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최초의 두려움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을 때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실 때에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끊어지면 남은 것은 하나님의 공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끊어지면 그 다음에는 무서운 형벌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의 마음에 두려움이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형벌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로마서 8:15

여기서 ‘종의 영을’‘무서워하는 영’이라고 했습니다. 종은 항상 잘못하면 쫓겨날까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아들에게는 그런 두려움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를 다니면서 조금 잘 하면 하나님 앞에 큰 상 받을 것 같고 조금 잘못하면 지옥에 갈 것 같다고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종의 영을 가진 자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무서워하는 마음’이라는 것은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의 마음 상태를 말합니다. 복음을 마음속에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은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니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히브리서 10:27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때 ‘불’은 지옥 불을 말합니다.

그리고 28절에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이라고 하였는데, 율법에는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모독하였다고 두세 증인이 와서 증거하면 그를 돌로쳐 죽이라고 했습니다. 두세 사람이 나타나서 ‘이 사람 간음죄 지었습니다’ 라고 하거나 ‘이 사람이 부모를 욕했습니다’ 라고 해도 돌로 쳐 죽였던 것입니다.

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히브리서 10:29

예수님의 피는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 같은 보배로운 피이기 때문에 그 피가 우리 죄를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의 피를 부정(不淨)하게 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하나의 죄인으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은혜를 배척하는 사람은 그 은혜를 증거하시는 성령을 욕되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29절에 ‘하물며’ 란 이렇게 은혜를 배척하는 죄가 모세의 율법을 범하는 것보다 더 큰 죄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그 거룩하신 예수님의 피를 부정하게 여기고 또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한 그 죄의 값은 당연히 지옥이며 그 심판의 강도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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